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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 장로교의 창시자 존 낙스 (John Knox, 약1514~1572)
박주신 2014-11-25 18:24:02 468

의 창시자 존 낙스 (John Knox, 1514~1572)

 




내일인 1124일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날입니다. 존 낙스는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1510-15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1572년에 1124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농부 출신인 낙스는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였지만 학위를 받지 못했고 1532년 수임을 받았습니다. 1543~1546년 프로테스탄트주의(개신교)로 개종하게 되는데, 그러한 개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조지 위샤트(George Wishart)라는 사람입니다. 조지 위샤트는 1546년에 이단자로 정죄받고 화영을 당하는데, 존 낙스는 조지 위샤트를 화형시킨 데이빗 비튼(David Beaton)을 피살하는데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프랑스 갤리선(노를 주로 사용하는 군용 배)에서 19개월 동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1549년 석방된 낙스는 영국으로 건너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1551년 궁중목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1553년 피의 여왕 메리(Bloody Mary)가 등극해서 철저하게 가톨릭을 옹호할 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들을 색출하고 처형시키는 등 박해가 심해지자 다음 해 영국을 떠나 방황하다가 제네바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칼빈, 불링거, 베자 등의 개혁가들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칼빈주의에 심취한 그는 1555년 스코틀랜드를 잠시 방문한 후 메리 여왕(Mary Stuart)에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 단체를 이끌었습니다. 다음 해 그가 스코틀랜드를 떠나자 로마 카톨릭은 그의 인형을 만들어 그를 화형시킬만큼 존 낙스를 미워하고 경계했습니다. 제네바에 돌아와서 1559년까지 머물면서 영국 피란민 교회 담임 목사로 섬겼는데, 낙스가 제네바에서 지냈던 이 시기에 그의 신학 사상들이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었습니다. 155952일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낙스는 스코틀랜드 교회 지도자로서 로마 카톨릭주의에 반대했습니다.

 

프랑스로 시집갔던 Mary Stuart1561년에 다시 돌아와서 로마 카톨릭주의를 퍼뜨리려고 하자 존 낙스는 가톨릭을 반대하는 선봉에 나섰습니다. 이 때 얻은 낙스의 별명이 하나님의 나팔수’(the Trumpet of God)였습니다. 메리 여왕은 존 낙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수만 명의 적군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왕의 특사인 토머스 란돌프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한 시간 안에 귓전에 계속해서 때리는 5백 개의 나팔보다도 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생겨난 별명이 하나님의 나팔이었던 것입니다.

 

존 낙스는 약 60세쯤 되었던 157211월에 그 생을 마감합니다. 그는 아내의 무릎을 베고 내가 처음으로 닻을 내린 곳을 읽어주시오라고 부탁했고,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마지막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종교개혁 기념비에는 칼빈, 파렐, 베자와 함께 존 낙스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의 최전선에서 가장 격렬하고 힘겨운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가 기초를 세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바로 우리 장로교 신앙의 시작이었습니다. 장로교인으로서 존 낙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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